건설, 미래를 본다 - ● 발주제도 선진화 움직임

일진월보(日進月步)라는 말이 있다. 날로, 달로 끊임없이 발전한다는 의미를 가진 사자성어다. 최근 건설현장에서도 이같은 진보적 움직임이 활발하다. 특히 ‘공정’이라는 키워드가 최근 주목받고 있다. 불공정을 바로잡기 위한 제도적 논의가 활발히 일어나면서 생겨난 움직임이다. 그 중에서도 원·하도급 간 힘의 격차를 발주방식으로 줄이기 위한 선진화된 발주제도의 도입 논의는 상당 부분 속도를 내고 있다.

◇발주제도 선진화 첫발은 국계법 개정=최근 발주제도 혁신의 밑거름이라고 불러도 될 만한 의미를 가진 계약법 개정안들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우원식 의원(더불어민주당, 서울 노원구을)이 올해 2월 발의한 공공공사에서 발주자가 공사 전 과정을 감독하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은 국가계약법 및 지방계약법 개정안이 이것이다.

기존에는 원도급사와 하도급사 간의 거래를 사적 거래로 보고 공공발주자가 개입하지 않거나 최소한만 해 왔다. 그러나 이 개념을 깨고 발주자가 원·하도급 간의 거래까지 모두 관리하도록 한 것이 이 개정안들의 특징이다.

개정안은 △계약서 작성 시에도 발주자가 적극 참여하고 △ 발주자가 원·하도급 간 계약사항 전반을 점검하며 △원도급사가 하도급 대금 미지급 시 발주자가 우선 지급하도록 했다. 이 외에도 개정안에는 발주자에게 불공정행위 적발 시 시정명령을 할 수 있게 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비록 발주제도 자체의 변화를 가져온 법안은 아니지만 건설현장에서 발주자가 원·하도급 모두에게 계약부터 공사관리 전반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도록 했다는 점에서 향후 여러 제도적 변화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전문가들도 “국계법이 선진화된 발주제도로 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국회에서는 이번 국계법을 시작으로 보다 선진화된 발주제도에 대해서도 고민한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등을 중심으로 ‘국가의 새로운 임무’ 등 새로운 발주자 역할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발주제도 선진화로 원·하도급 힘의 격차 줄여야=발주제도 선진화에 대한 논의는 직할시공제, 지명하도급제 등의 이름으로 꽤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기존의 도급구조를 탈피해 원·하도급 간 힘의 균형을 맞추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미국과 독일,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이와 유사한 발주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84년 국방조달규정과 연방조달규정을 통합해 발주자가 사업에 직접 참여, 전반적인 사업관리를 하도록 시스템을 개편했다. 계약과정에서부터 발주자가 관여해 철저히 감시 감독하게 돼 있고, 사업진행도 단계별로 철저한 검토를 거치게 돼 있다. 모든 공사는 착공 전 발주자의 사전검토와 승인이 필요하고, 이 과정에서 경제적 약자들도 권리를 보장받는다.

독일도 1980년대 보통거래약관규제법을 도입해 미국과 유사한 방식으로 계약부터 건설산업 전반을 발주자가 관리·감독케 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지명하도급 발주제도를 채용하고 있다. 발주자가 특정 공사를 어느 전문건설업체에게 하도급할지를 직접 선정하는 방식으로, 이렇게 선정된 하도급업체는 주시공자(원도급사)와 함께 공사를 진행하는 구조다.

일본 역시 지명하도급제도와 유사한 ‘코스트온’ 제도가 있다. 발주자가 코스트온 사업자를 선정하고 해당 하도급 부분의 공사금액을 확정해 발주하면, 원도급자는 자기 지분의 공사비에 코스트온 금액과 그에 따른 관리비를 더해 총액으로 계약하는 방식이다.

한국에서도 2009년 발주자가 직접 전문공종별 공사를 발주하는 직할시공제를 도입한 바 있다. 사업시행자(발주자)가 직접 전문건설업체와 공사를 계약해 시공하는 방식이었다. 당시 도급구조에서 발생하는 불공정행위를 예방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돼 현장에서 활용됐다.
업계 한 전문가는 “국내도 세계적 추세에 맞춰 선진화된 발주제도 도입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꺼지지 않은 불씨 발주자 직접발주제=국내에서 시행했던 직할시공제는 결론적으로 제도로서 안착하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가장 큰 문제는 발주자의 전문성 부족이었다. 직할시공제를 이끌었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당시의 인적구조로는 해당 제도를 유지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최근 이같은 문제점을 보완할 방법으로 ‘종합사업관리제도’(PMC, Program Management Consultants)가 주목받고 있다. 발주자가 어려움으로 꼽는 전문성을 보완할 조직을 구성해 발주자를 대리, 공사계약부터 시공 전반까지 컨트롤 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PMC를 통한 공사 관리방식을 전 현장에 도입 중이다. 공공공사에서는 공무원의 지위를 가지고, 민간에서도 발주자의 권한을 대리한다. 이에 따라 모든 계약과 공사결과에 대한 책임은 PMC의 승인하에 발주자가 진다. 그러다 보니 공사 전체적인 관리가 과거보다 꼼꼼하게 진행된다는 특징이 있다. 비록 하도급업체들에는 강화된 전문성을 요구하지만 원도급사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저지르던 과거의 갑질 등은 대폭 줄어 공정한 산업을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PMC를 통한 공사관리 방식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에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를 중심으로 선진화된 발주방식 중 하나로 검토하고 있다. 최근 발의된 공사 전 과정을 감독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계법이 통과될 경우 후속 논의로 발주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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