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을 지난 12일 입법예고했다. 관련 부처들이 다수 참여했고 노·사 등 각계 의견을 수렴한 결과라고 한다. 그런데 노·사가 다 불만이다. 내용은 모호하고 기업체 대표는 교도소 담장 위에 서게 됐다. 분쟁과 소송 난무 사태가 불 보듯 뻔해졌다. 중대재해를 막겠다며 만든 시행령 자체가 자칫 ‘중대 재해급’이 될 판이다.

이 법의 처벌 대상은 사업주·경영책임자 또는 안전·보건책임자 등이다. 이들은 중대재해로 사망자 1명 이상,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직업성 질병자가 1년 내 3명 이상 발생 시 1년 이상 징역형을 받는다. 이처럼 징역 1년 이상의 형량 하한선을 두는 경우는 촉탁이나 승낙에 의한 고의 살인죄 혹은 방화죄와 같은 범죄이다. 이런 식으로 사업주·경영책임자가 구속되면 경영 공백은 물론 회사가 공중분해될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

무엇보다 시행령의 경영책임자 개념과 범위, 의무 사항 등이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많다. 예컨대 경영책임자 등이 따라야 할 ‘관계 법령’이나 이행해야 할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가 구체적으로 어떤 기준을 말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중대 산업재해의 정부 지정 24개 직업성 질병 목록에는 열사병과 레지오넬라증, B·C형 간염, 매독, 에이즈(AIDS) 등까지 포함된다. 중증·경증도 따지지 않는다. 법령이 모호하면 분쟁이 잦아지고 담당 공무원의 재량권만 그만큼 더 커지게 마련이다. 변호사 업계도 덩달아 일감이 늘어날 게 뻔하다. 법령의 모호함과 포괄성으로 인한 역기능과 책임은 기업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문제는 이번 시행령에 대해 노동계 역시 불만이라는 점이다. 노동계는 뇌심혈관 질환이나 근골격계 질환, 직업성 암 등은 처벌 대상서 제외됐다며 반발하고 있다. 중대 시민재해의 경우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과 이행에 관한 의무로 ‘적정인력 배치’와 ‘적정 예산 편성’을 규정했는데 ‘적정’이란 대목 역시 노사 양측으로부터 그 뜻이 모호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또 중대 시민재해 대상이 되는 공중이용시설 범위 중 실내 주차장과 오피스텔, 주상복합, 전통시장 등은 제외된 것에 대해서도 모법보다 범위가 축소됐다는 불만이 나온다. 애초 무리한 법이니 그 시행령이 제대로 나올 리 만무하다. 양쪽 모두의 불만을 사는 법을 만들어도 집행은 될 것이다. 모든 것이 다 비용이다.

중대재해는 처벌보다 예방이 먼저라는 얘기를 아무리 해본들 소용이 없다. 안전도 결국 비용이기 때문에 적정공사비와 적정공사기간 보장이 근본적 예방책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적정공사비 산정은커녕 오로지 “싸게 공사하되 안전사고는 없도록 하라”며 공사비 삭감에 골몰하고 있다. 납세자를 위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더 큰 재해를 부를 수 있는 무책임이자 포퓰리즘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는데 두 번째 단추가 제대로 끼워질까. 갈수록 일이 커지기 전에 단추 풀고 다시 끼우는 게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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