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제 상황을 한마디로 말하면 슬로플레이션(slowflation)이라는 용어가 가장 적합할 것이다. 보통은 실물 경기가 좋으면 물가도 같이 오르고 경기가 나쁘면 물가도 하락하는 것이 정상이다. 즉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두 경제 변수의 방향이 반대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다.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가 나오는데 물가상승률은 높아지는 상황이다. 대표적인 예가 과거 오일쇼크이다. 2차 오일쇼크 기간에서 가장 충격이 컸던 1980년에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1.6%로 역성장을 했고,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8.7%에 달했다.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이었다. 슬로플레이션은 스태그플레이션보다는 경기 침체가 다소 약한 단계로, 물가 급등 속에서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까지 가지는 않지만, 이전 기간보다 상당히 낮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의 슬로플레이션도 오일쇼크 때와 같이 국제유가의 급등에 주된 원인이 있다. 근래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어 본 사람이면 최근 인플레이션의 강도를 충분히 체감했을 것이다. 이러한 충격에 대해 현대경제연구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국제유가가 연평균 배럴당 100달러에 이르게 될 경우, 경제성장률은 0.3%포인트 하락하고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1%포인트 상승하게 된다.

2022년 우리나라의 원유수입물량을 10억 배럴로 추정할 경우, 국제유가 연평균 100달러 시나리오에서 2022년 경상수지는 약 300억 달러의 감소 압력이 발생한다. 최근 연간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700억 달러 내외임을 생각해 보면 상당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문제는 국제유가가 더 오를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주요 국내외 경제연구기관에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공급 능력을 넘어서는 수요의 증가이다. 기본적으로 주요국들의 정책 기조가 ‘위드코로나’로 전환되면서, 최근 글로벌 원유 수요는 코로나 이전 수준인 하루 소비량 1억 배럴에 근접하고 있다.

그러나 공급은 현재의 9500만 배럴 규모에서 크게 늘어날 여지가 없다. 가장 큰 원인은 2020년 이후 글로벌 경제위기 상황에서 에너지 산업들의 채굴, 정제, 운송 설비투자가 정체됐다는 점이다. 당분간은 공급이 모자라는 상황이 지속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또한, 이번 겨울은 라니냐의 영향으로 한파가 지구촌을 덮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정상적인 경제 상황에서 맞는 유가 충격이라면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을지 모른다. 그러나 거의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코로나 위기에 탈진이 된 한국경제의 입장에서 이번 유가 충격의 체감 정도는 남다를 수 있다. 만에 하나 비관적인 시나리오를 따라 유가 100달러 시대가 장기화될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정부는 첫째, 올해 남은 기간 재정집행률을 최대한 끌어올려 연내 불용 예산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아가 내년 상반기에 경제 충격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2022년 정부사업의 조기 집행 비중을 높여야 한다.

둘째, 소비심리의 급랭을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공서비스 요금 인상 유예, 가격이 급등한 수입 농산품 및 공산품에 대한 관세 인하 등을 통해 서민 체감 물가 안정에 주력해야 한다. 한편, 수급 불안을 이용한 매점매석을 방지하기 위해 농축수산물 유통 체계의 디지털 전환을 통한 거래 투명성 확보 노력도 요구된다.

셋째, 오일쇼크 장기화 가능성에 대비해 원유 및 원자재의 안정적 공급망을 확보해야 한다. 최근 고유가의 원인에 산유국들의 정치적 의도도 깔려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자원민족주의 대두 가능성에 대응해 전략 비축유 규모의 재조정과 에너지 자원의 안정적 공급을 위한 외교·통상 노력이 절실하다.

한편, 기업들은 수익성 악화를 대비한 비상경영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생산원가의 급증 가능성에 대비해 단계별 비상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 능력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또한, 원가관리 시스템의 도입, 전사적인 비용절감 캠페인, 재고 관리의 효율성 증대 등과 같은 노력도 요구된다. 

이번 오일쇼크가 단기간에 그쳤으면 좋겠으나 예상 밖으로 길어진다면 2022년은 우리에게 쉽지 않은 한 해가 될 수 있다. 위기의 끝은 또 다른 위기의 시작이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한국 경제가 어렵지 않은 때가 있었던가? 이번에도 잘 헤쳐나갈 것이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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