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의 설이 생각난다. 그때 필자는 청와대 국정과제비서관실에서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담당행정관으로 있을 때였다. 

설을 보름 앞두고 부산에서 어느 전문 건설업체가 청와대까지 찾아왔다. 누구에게 소개받았다고 왔는데 설 전에 30억원을 받아야 부도를 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져온 파일을 한 보따리 펼쳐 보였다. 돈이 몇억원도 아니고 무려 30억원이나 되니 협상이 잘 되겠는가라고 생각됐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파일을 훑어보니 너무나 정리가 잘돼 있었다. 그래서 갑에게 더 적극적으로 어필하시라고 했다. 그 정도 준비된 파일이면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또 명절 전에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센터를 마련해 특별기간으로 운영하면서 적극적인 조치를 할 것이라고 했다. 그 뒤에 연락이 오기를 27억원으로 해결해서 부도를 무사히 넘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에는 반대의 경우이다. 전에 불공정거래로 손해를 본 회사를 만났다. 그 회사의 사장은 불공정거래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횡포를 말했다. 그 사업자는 문서보다는 약속을 믿으며 사업을 해왔다. 세상일이 선한 의도대로 잘 되는가? 대체로 건설공사는 서로가 얽혀 있다. 선행공사가 지연되면 후행 공사는 당연히 비용투입이 더 된다. 이것이 수백만원 등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면 모르겠지만 수억, 수십억원에 이르면 감당하기 어렵다.

특히 발전소 같은 장기공사, 지역 민원이 발생할 우려가 큰 경우, 탈원전처럼 정부의 방침에 따라서 왔다 갔다 하는 공사 등에는 비용의 증가 위험이 크다. 증액해 준다는 말을 믿고 완료했는데 정산이 안 됐다. 결국 이 사건은 공정위에 신고됐다. 조정도 안돼 결국 심판정까지 오르게 됐다. 결론은 무혐의였다. 신고 후 무려 2년 만에 나온 결과였다. 그 신고인은 난리였다. 감사원에 진정하고, 국회에 민원 넣고, 언론에 기사화하고 했다. 공정위의 판단을 뒤집을 수 없었다. 무혐의가 나오면 민사소송을 하더라도 이기기 어렵다.

공정위도 조금 빨리 결론을 내줬으면 좋았을 것이었다. 또 신고가 들어오면 현장조사를 하러 가서 신고인이 제출하기 어려운 정황증거를 원사업자의 컴퓨터, 이메일, 현장회의록, 보고서 등에서 찾아내는 적극성을 보였어야 했다.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에 대한 배경을 담은 보고서나 회의록 등이 있다. 이런 것을 찾아내야 불공정거래 사건의 배경을 정리하고 그것으로 인해서 시정조치를 강하게 할 수 있다. 공정위가 신고인이 제출한 것으로만 처리하면 제대로 된 조치가 나오기 어렵다. 어쨌든 공정위가 적극적인 조사를 했다면 신고인의 억울함을 풀었을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 보면 불공정거래가 발생했을 때 누구에게 더 책임이 있는가? 필자가 지난 20여 년간 이 분야에 종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할 때 갑과 을 그리고 정부의 책임 분담은 20 : 70 : 10의 비율로 보인다. 즉 을의 책임이 절대적이라는 의미이다. 갑이나 정부를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을이 책임을 지고 하는 수밖에 없다. 공정위에 근무하던 시절에도 후배들에게 적극적인 조사를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그들도 수많은 사건에 치여 있다 보니 현장조사 등을 할 여유나 시간이 없다는 애로사항이 있다.

결국, 을의 책임이 절대적이다. 평소에 공무 관리 능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임직원들에게 이런저런 서류를 챙기라고 지시는 한다. 그런데 임직원들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귀찮고 현장이 바빠서 그런 서류를 일일이 챙기지 못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가 몇 년의 세월이 흐르고, 위험이 잠복돼 있다가 불거진다. 

결국 정말 중요한 서류는 사장이 직접 챙기는 수밖에 없다. 매출 300억원 이하의 규모에서는 사장이 핵심서류 목록표를 만들어두고 챙겨야 한다. 일이 터지고 난 뒤에 지시했는데도 왜 안 했느냐고 다그치면 직원은 머리를 긁적이며 “다음부터 잘하겠습니다”라고 하면 뭐라고 할 텐가! 전문건설업체들도 대응방식을 바꿔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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