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초입부터 몰아치기 시작한 글로벌 환경 변화는 시장과 산업, 그리고 국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디지털과 메타버스, 그리고 인공지능 등이 일상용어가 돼 버린 세상이다. 미국 공학한림원이 발표한 논문 중에 교통 생태계 변화를 예고하는 원고가 눈에 띄었다. 수천년 유지돼 왔던 도로가 조만간 큰 변화를 맞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자동차가 발명된 이후 100년 동안 사용된 연료엔진이 사라지고 배터리로 대체된다. 도로 위 자동차가 하늘길로 들어서는 시대가 멀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급변하는 글로벌 환경에 대해 전통적인 건설 울타리가 방패 역할을 해 줄 것으로 믿어왔었다. 대장동 주택공급 이익 편취 소동에서 말단에 있던 건설이 갑자기 토건족으로 소환됐다. 행정, 세무, 법조계 집단이 주인공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에게 토건족이라는 이유로 매도됐다. 한국의 경제성장 기적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도로와 산업설비 등 국토인프라 구축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신흥국이 더 잘 알고 있다. 한국건설은 3不(부실·부패·부정) 이미지가 국민 뇌리에 깊게 새겨져 있다. 과거의 공헌도 3不 이미지로 묻혀버렸다. 글로벌 환경 변화와 고질적인 3不에서 벗어나는 길은 점진적인 개선보다 혁신을 능가하는 충격요법, 즉 생태계 혁신이 필요하다.

건설을 3不 이미지 늪에서 탈출시켜 국민경제와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산업으로 만들기 위해 정부가 건설정책 혁신을 선언했다. 건설에 내재된 문제를 알고 있는 협회·단체와 노동단체도 공감했다. 공감대를 기반으로 2018년 산학연과 정부, 노동단체 대표가 참여하는 혁신위원회가 출범했다. 40년 이상 유지돼왔던 업역을 폐지하기로 했다. 세분화된 전문공사업도 대업종화 시키기로 했다. 업역이 만들어 낸 원·하도급 수직생산구조를 수평구조로 바꾸면서 다단계거래를 축소했다. 직접시공을 활성화하기로 했다. 기술정책도 혁신의 길로 들어섰다. 현장생산방식을 공장제조방식으로 바꾸는 기술개발에 수천억원의 R&D 예산이 투입되기 시작했다. 제작공장에서 생산된 부품을 건설현장에서 조립하는 과정 및 관리를 디지털화시켜 원격관리가 가능한 기술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아날로그 기술을 디지털로 전환시키는 기술정책 혁신이 가속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건설정책 혁신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가 혁신돼야 실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혁신을 수용해야 하는 제도개혁은 출발도 못한 상태다. 건설정책 혁신은 한국건설의 생태계를 바꾸는 엄청난 변화다. 건설현장의 제조 공장화는 기존 제도로 수용되기 어렵다. 건설과 제조업의 경계선이 없어진다. 공장제작화는 설계와 시공 사이 경계선을 파괴한다. 자동차나 조선에 설계업과 제작업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2015년 다보스포럼에서 산업과 산업, 기술과 기술의 경계선이 무너지고 산업 내 경쟁이 산업 간의 경쟁으로 바뀐다는 예측이 국내 건설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건설 생산의 속성은 ‘선 주문, 후 생산’이다. 정부의 정책혁신 방향이 옮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자 혁신에만 집중돼있는 한계가 있다. 1994년부터 시작된 영국의 건설혁신이 발주자 역할에 둔 것과 대조된다. 우리나라는 과도하게 얽힌 법과 제도 만능 국가다. 혁신의 주체가 돼야 할 발주자는 법과 제도에 얽매여 있다. 정책혁신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발주자의 역할과 산업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작년 6월과 올해 1월 광주에서 잇달아 발생한 안전사고가 국민의 건설에 대한 이미지를 더욱 나쁘게 만들었다. 국민 10명 중 9명이 건설에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공감한다. 국민 4명 중 3명이 건설이 부정·부패하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작년에 발표됐다. 건설업 종사자는 부정 청탁이나 뇌물 수수를 해 본 경험이 없다는 것과 상반된 조사 결과다. 언론 매체는 건설인보다 일반국민의 응답결과를 더 부각시킨다. 1월27일부터 발효된 중대재해처벌법의 형량이 과도하다는 산업체의 목소리가 힘을 잃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토교통부는 올해 정책 목표에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을 포함시켰다. 학계와 법조계에서는 재해법을 처벌보다 사고 예방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으로 사고 예방을 할 수 있다면 이 말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사고 예방은 법보다 시스템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법과 제도 완화를 주장하기 전에 산업체가 선행적으로 혁신하는 행동을 보여줘야 설득력이 있다. 선행적 조처가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 법과 제도개혁을 요구하는 게 정도다.

건설 생태계 혁신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제도개혁이 불가피하다. 5월에 출범하는 새 정부에 건설제도 개혁을 주문해 본다. 주문에 앞서 협회·단체가 중심이 돼 건설 생태계 혁신을 시작하겠다는 약속을 국민 앞에 내놓는 결단이 필요하다. /서울대 건설환경종합연구소 산학협력중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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