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태풍 ‘힌남노’ 폭우로 침수된 경북 포항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를 빼러 들어갔던 주민 9명이 실종됐다가 7명이 사망했다. 지하 주차장 침수 방지 대책이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안타까운 사고다.

사고는 아파트 근처 하천이 범람하자 관리사무소에서 지하에 있는 차량을 옮겨 달라고 했고, 주민들이 주차장으로 들어갔는데 8분 만에 주차장이 완전히 물에 잠겨 일어났다. 희생자들은 순식간에 지하에 물이 이 정도로 찰 줄은 아마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지하’ 관련 사고는 최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8월 말 서울서 내린 기록적 폭우로 신림동 반지하에서 잠을 자던 일가족이 목숨을 잃었다. 강남 일대도 시가지가 물에 잠겼다. 

지하는 물이 가장 먼저 차고 배수가 느리다. 게다가 흙탕물이라 시야 확보가 안돼 구조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 포항 사고 주차장은 물이 5만t 정도 찼는데 양수기를 동원했는데도 용량(시간당 2500t) 탓에 배수에 시간이 한참 걸렸다.

문제는 기록적인 폭우와 같은 이상기후가 거의 매년 반복되다시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만 봐도 2020년 장마는 역대 최장기간 기록을 세웠다. 역대 풍속 순위 1~7위까지의 태풍이 모두 2000년 이후에 발생했고, 2010년대의 폭염 일수도 그 이전보다 5일이나 많은 15.5일을 기록했다. 우리는 ‘기록적’이라 표현하고 있지만 최근 폭우와 폭염은 더이상 기상이변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차라리 타당해 보일 정도다.

더욱 걱정스러운 점은 기후변화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폭염이나 폭우, 가뭄 등 기후 재난이 잦아지고 그 강도도 세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한 예측 결과에 따르면 온실가스 배출이 지금 속도대로 증가하면 21세기 말 일부 지역에선 하루 강수량 800㎜ 이상의 극한 기후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올해 서울을 강타한 물폭탄의 하루 강수량이 400㎜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폭우 등 기상이변이 속출하는데 지하 시설의 침수 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인명과 재산 피해는 더 커진다. 8월 폭우와 9월 ‘힌남노’로 자동차만 1만3000여대가 침수됐다.

비용이 들더라도 물막이 등 안전기준을 앞으로 예상되는 기후변화에 맞춰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이유다. 예를 들어, 이번 홍수 피해를 키운 저류시설을 비롯한 방재시설의 설계 기준은 50년 빈도 확률 강수량을 적용하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50년 빈도’라고 해봤자 모두 기후변화 이전 과거 데이터일 뿐이다. 물막이 등 침수 방지시설 설치, 배수시설 용량 확장 등 기준을 획기적으로 올릴 필요가 있다. 지하 시설 안전기준도 마련해야 한다.

폭우로 침수될 때마다 논란이 되는 반지하 주택 문제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주거비가 저렴하기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와 같은 사회취약계층이 주로 거주한다. 2020년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약 33만 가구가 지하나 반지하 주택에서 살고 있다. 이 중에서 20만여 가구가 서울에 있고, 발달장애인 일가족이 사망한 관악구를 비롯해 중랑구, 광진구, 강북구 등에 많다. 앞으로의 기후변화는 이들의 가장 기본적인 ‘주거권’조차 지켜주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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