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3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자 세계 금융시장이 발작했다. 9월26일 영국 파운드화의 미 달러 대비 환율이 한때 사상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일본과 중국의 엔화, 위안화 역시 심각한 약세다. 엔화는 올해 들어 가치가 25% 가까이 떨어져 주요국 통화 가운데 하락 폭이 가장 크다. 미국은 제 나라 물가가 잡힐 때까지 금리를 올릴 태세다. 그래도 미국은 별 탈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뉴욕타임스(NYT)는 9월27일 기사에서 이게 가능한 이유를 짚었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이며 세계 금융과 무역에 관한 영향력이 막강하다. 달러가 세계 준비 통화(reserve currency)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이 관여하든 아니든 세계 거래의 약 40%가 달러로 이뤄진다고 한다.

그렇지 못한 한국과의 대비는 극명하다. NYT는 미국 구매자들이 1년 전 50유로짜리 벨기에 초콜릿을 살 때 58.50달러를 냈는데 이제는 48.32달러만 지불하면 된다고 밝혔다. 반면 한국인은 1년 전 100달러어치 석유를 사는데 11만7655원을 썼는데 지금은 14만3158원을 내야 한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심각한 문제일 텐데, 우리 경제 당국은 낙관적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최근 원·달러 환율 급등 상황에 대해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때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보유 외환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 달러를 내다 팔아 환율 방어를 하겠다는 뜻인가 궁금했다. 아닐 것이다. 그럴 수가 없다.

블룸버그 통신은 한국 원화를 현재의 경제위기에 가장 취약한 통화 중 하나로 지목했다. 미국과의 금리 차로 가만있어도 외국 자본이 빠져나갈 텐데 여기에 달러 유출이 동반되는 경상수지 적자 행진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진짜 위기는 아직이라고 한다. 물가를 잡고 환율을 안정시키려면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 이미 미국과의 금리 차가 발생한 만큼 따라 올리지 않을 방도가 한국엔 없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면 가계부채 뇌관이 터진다.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주택담보대출이 상환능력이 떨어지는 2030 세대의 ‘영끌’이라는 비이성적 시장 참여로 급증한 탓이 컸다.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때처럼 이 버블은 펑 하고 폭발할 수 있다.

올해 7월 미국 집값이 전달보다 떨어졌다. 월간 단위 주택가격 하락은 10년 만이라고 한다. 공격적인 금리 인상이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두 배가량 올렸고 주택시장이 냉각했다. 강철같은 펀더멘털을 가진 미국도 이런 상황이다.

원화 가치 하락은 모든 위기의 전조다. 통화정책은 환율 그 자체보다 인플레이션이나 경기, 무역수지 등 우리 거시경제 전반에 파급을 미친다. IMF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도 정부는 경제 펀더멘털이 튼튼하다고 했다던데 그때의 데자뷔가 아니어야 한다. 안심하라는 말보다 최악을 가정한 대비책을 치밀하게 준비할 때다.

저작권자 © 대한전문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