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노선이 통과하는 아파트단지 주민이 안전과 진동 문제로 불안해한다. 지하 50m 깊이로 지나가는 터널이 행여 아파트 구조물 안전에 영향을 미치지나 않을는지, 소음과 진동이 주민생활에 불편을 주지 않을지 걱정한다. 문제의 아파트단지는 10m도 안 되는 도로 지하에 이미 지하철노선이 지나가고 있지만 주민 누구도 안전이나 생활 불편을 호소하지 않는다. 토목기술자는 지하 50m 깊이라면 지상 구조물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 단정한다. 주민과 기술자 사이 온도차가 너무 크다.

안전과 생활 불편을 우려하는 주민을 대신해 재건축추진위원회가 아파트단지 벽에 큰 현수막을 내 걸고 집단항의를 표시한다. “00그룹 000은 목숨 팔아 돈 버느냐”가 현수막에 적힌 자극적 내용이다. 기술보다 주민의 불안감과 감정을 앞세운 주장이다. 불안과 불만이 쌓인 주민의 집단 민원성 호소에 대해 해당 건설사는 지하 50m 깊이로 공사하기 때문에 안전에 문제가 없다 주장한다. 주무부처 장관은 “다른 지역은 문제없이 건설되고 있으니 반대를 이유로 국가사업을 변경하는 선례 불가”를 내세우면서 노선변경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3개 집단의 쟁점에 기술이 보이지 않는다. 공학기술자 집단의 목소리가 실종됐다. 이해당사자 간 각자 주장만 보인다. 과거 몇 가지 선례를 보자. 경부고속철도 공사 중 금정산터널 구간에서 발생했던 ‘도롱뇽’ 생태계 위협을 이유로 단식 투쟁을 할 만큼 격렬한 반대로 18개월이 넘도록 공사를 지연시켰다. 결과는 해당 터널굴착 구간 공사에서 필요한 물을 외부로부터 공급받을 정도로 지하수가 메말라 있음이 확인됐다. 습지가 아닌 건지였던 것이다. 도롱뇽 생태계에 전혀 문제가 없었던 셈이다. 세계에서 제일 우수한 공항으로 인정받는 인천국제공항 건설 때도 매립지라는 이유를 들어 공항건설을 반대한 학자가 있었다. 활주로가 매립지 위에 건설되면 부등침하로 인해 항공기 이착륙 시 대형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추측성 이유를 들어 언론사를 동원해 공항건설을 반대했었다.

고속철도와 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집단이 공교롭게도 건설공학 기술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었다. 이때도 건설공학자 전문가집단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또 다른 예는 높이 555m 롯데월드타워 건설이다. 서울공항에서 이착륙하는 항공기의 충돌 가능성을 주장하는 그룹이 있었다. 건축주는 공항과의 거리를 따져 미국연방항공청의 충돌위험모델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충돌 확률이 1000조분의 1로 나와 항공안전기준 1000만분의 1보다 훨씬 안전함을 강조했다. 이번에는 군용항공기 조종사 설문조사를 통해 여전히 충돌 위험성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준공 이후 누구도 이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않는다.

광역급행철도 지하 노선의 안전문제는 전통적인 토목과 건축공학, 즉 건설공학집단의 지식영역이다. 이해당사자의 일방적 주장보다 공학기술기반의 제3자의 전문지식을 필요로 한다. 국내에 건설공학 지식을 대표하는 2개의 전문 학술단체가 있다. 토목학회와 건축학회다. 전문가집단임을 자처한다면 분석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주문하고 싶다. 주민이 우려하는 불안과 불편이 실제 발생할 수 있는지에 대해 분석 후 의견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정부와 산업체가 학술단체를 지원하는 이유는 학술만이 아닌 사회적 기여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정부와 관련 산업체가 공동으로 학술단체에 공식으로 의견 주문을 요청해 결과를 해당지역 주민들에게 공개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주민 호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주민을 안심시키는 전문가집단의 목소리가 이해당사자 주장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침묵이 금이라는 옛말이 있지만 전문가집단의 침묵이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방치해 혼란과 비용을 유발시키는 부작용이 클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에 ‘30분-1시간-2시간’ 출·퇴근 교통정책이 담겨 있다. 수도권 내 30분 이내 출·퇴근 시간 목표 달성이 광역급행열차 개통에 달려있다. 정부와 산업체가 한 시라도 두 학회에 ‘안전과 불편’ 문제 판단 여부를 의뢰할 것을 제안한다. 주문이 없어도 양대 학술단체가 자발적으로 나서서 주민의 우려를 불식시켜 줄 사회적 책무가 있다. 지식단체의 리더십과 신뢰는 자발적 행동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믿기에 주문하는 것이다. 건설기술자 그룹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이유를 안다면 학회가 사회적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게 아닌가. 침묵보다 무게 있는 목소리가 필요한 때다. /서울대 건설환경종합연구소 산학협력중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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