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의 마지막 모습은 펑 터지지 않는다. 쉬익 새어 나간다. 집값은 그 움직임이 주가보다 훨씬 느리다. 집값의 경우 하루 만에 23% 뚝 떨어지는 검은 월요일도 없다. (중략) 이제 우리 귀에 쉬익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거품에서 공기가 새어 나오는 소리다. 우리 모두가, 대상 지역에 부동산을 소유한 이들만이 아니다. 고민해야 할 때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이 <폴 크루그먼, 좀비와 싸우다>라는 책에 적은 한 대목이다. 2005년에 쓴 글이다.

미국서 1990년대 말 주식 거품이 꺼졌고 2000년대 초반 시작된 양적 완화와 금리 인하는 집값 폭등을 불렀다. 주택 소유자가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재융자를 하면서 부채의 늪에 빠지고 시중에 유동성이 넘쳤지만 중앙 정부는 이를 통해 망가진 주식 시장이 남긴 폐허를 메꾸려 방관했다. 소위 주식과 주택 거품의 ‘돌려막기’였다. 또 이러한 메커니즘을 쓴 결과는 모두가 다 아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였다.

지금 한국의 상황이 그때와 비슷하다. 주택 시장이 꺼지고 있다. 주식 시장도 마찬가지다. 돌려 막을 틈도 없이 주식과 주택 시장 거품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거의 동시에 쪼그라든다.

어떤 사달이 날까. 미국의 2000년대 말과 똑같은 일이 되풀이될 것이다. 건설 경기가 식고 집을 담보로 더 돈을 빌릴 수 없기에 경제가 급속도로 둔화한다. 경기와 소비 지출이 모두 곤두박질치면서 국가 경제가 후퇴한다. 크루그먼이 집값 거품이 빠질 때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한다”고 한 이유다.

2000년대 미국과 ‘똑같은’ 일만 되풀이되면 그나마 다행이다. 한국은 미국과 다르다.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 거부와 민주노총의 동조 파업이 이어지고 있다. 미사일을 수시로 날리는 북한도 있다.

이런 변수가 없다 해도 한국의 지표는 잿빛 실적과 예정표 투성이다. 10월 전산업 생산이 전월보다 1.5% 감소해 30개월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올해 들어 11월까지 발생한 무역적자는 통계 작성 이후 최대인 425억6100만 달러다.

국내외 기관의 내년 한국 성장률 전망치는 1.7∼1.8%다. 이 숫자도 믿지 못하겠다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외신 상당수는 한국의 내년 성장률이 0%대에 머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0%대면 실물 경기는 사실상 마이너스(-) 성장이다. 공식 전망치를 -1.3%로 잡은 투자은행(노무라)도 있다.

신기한 것은 한국 사회 전반의 위기감이 이런 팩트와 전망에 비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때 파업해 산업 발목을 잡은 노조나 대화도 안 하는 정부 모두 ‘노답’이다.

“신속하고 과감한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영영 때를 놓칠지 모른다. 아무런 대책도 강구하지 않으면 이 경기 후퇴가 몇 년이나 지속할 수 있다”라고 2009년 당선인 신분으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말했다. 그리고 취임 뒤 그는 경기부양을 제1의 정책과제로 삼아 금융위기 토양에 오늘날 미국을 호황으로 이끈 씨앗을 뿌렸다.

‘퍼머크라이시스(permacrisis, 영구적 위기)’의 시대라고 한다. 한국의 현재와 미래에 관해 이 단어만큼 어울리는 말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진짜 몇 년씩의 위기의 시대를 상상하고 싶진 않다. 위기 극복을 위한 전반의 절박한 인식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저작권자 © 대한전문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