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능력, 입시 등 학력평가, 직장 입사 평가 등 우리 사회의 주요 평가가 이뤄지는 각각의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공정성’일 것이다. 더불어 공항, 철도, 지하철, 항만 등 인프라 및 시설물 건립, 최근의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에 기반한 주요 공공 정보시스템 구축 사업 등 공공사업의 수행자를 선정하는 입찰 과정에서도 공정성은 무엇보다 강조된다.

하지만 이러한 공공조달에서의 공정성이 ‘절차적·형식적 공정’에 너무 많은 비중이 부여되고, 실력 있고 혁신적인 사업자를 선정하기 위한 ‘구체적 타당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 본래 달성하고자 한 공공사업의 취지나 성과를 얻지 못하고 궁극적으로 국민 세금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는 정성적 평가로 대표되는 평가방식에 어려움을 느끼는데, 이는 공공사업자 선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300억원 이상의 국가계약법 적용 일반공사의 사업자선정방식인 종합심사낙찰제의 경우를 보면, 객관적으로 수치화할 수 있는 정량평가 항목만으로 구성돼 있고 기술적 제안내용을 담은 정성평가 항목은 없다. 이에 비해 기술적 제안내용에 대한 정성평가가 가미된 설계·시공 일괄입찰 등 기술형 입찰의 비중은 2017년 전체 공공공사액 대비 15.9%에서 2020년 9%로 점차 감소해 동 입찰이 일반적으로 40% 정도 비중으로 수행되는 미국, 영국 등과 비교해 낮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공공사업에서 이러한 정성평가 방식이 갈수록 외면받는 데에는 먼저 정성평가를 담당하는 평가위원에 대한 불신이 가장 큰 요인이라 할 수 있다. 기술형 입찰의 경우 그 평가결과에 대해 많은 민원이 발생하고, 발주 기관장은 이러한 잡음에 민감하다. 두 번째, 합리성이나 효율성보다 형식적 공정성을 중시하는 우리 공공계약체계를 들 수 있다. 더불어 조달성과를 평가하기보다는 계약법규를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감사 관행 또한 공공사업에서 형식적 공정성의 영향력을 극대화한다. 세 번째, 전문적 평가가 가능한 지원체계가 미비하다. 무엇보다 주요 발주기관은 계약상대자인 공급업체가 지닌 기술적 현황 및 지식, 경험 수준을 뒤따라가지 못하는 정보 비대칭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절차적 공정성 일색으로는 공공사업의 발전은 저해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려할 수 있는 대안으로써 먼저 민간과 공공 간의 장벽을 낮추고 기술전문가를 계약담당 공무원으로 대폭 수혈하는 공직임용체계에 대한 개선을 들 수 있다. 해외 선진국은 오래 기술역량을 축적한 민간 경력자를 공공발주 담당관으로 선발·운용하는 사례가 많다. 이들 공공조달행정은 담당 계약관 책임하에 본래 예산액을 다소 상회해도 조달성과물의 총생애주기비용을 감안해 정부에 유리한 제안을 선택하는 계약관의 재량권 행사에 익숙하다.

다른 측면에서 우리 제도상 단기간 해당 분야 기술전문가 중심의 발주담당자 확충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이를 보완하기 위한 별도의 공공사업 전문 평가기관이나 지원체계를 구성해 관련 전문성을 기반으로 공정성을 도모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호주를 대표하는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문 닫은 화력발전소를 리모델링해 세계적 명소로 자리 잡은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 등은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현대 공공건축물이다. 우리 공공조달행정이 현재처럼 형식적 공정성 위주의 정량평가에 머무르지 않고, 유연하면서도 전문적 정성 평가 기반을 마련하려는 용기를 갖지 않는 한 향후에도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의 공공건축물은 찾아보기 어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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