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서 과학기술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과학기술기본법’ 제7조를 근거로 하며 과학기술 발전에 관한 중장기 정책 목표를 제시하는 5년 단위의 최상위 계획이다.

2002년 국민의 정부 시절 말에 시작된 과학기술기본계획은 2003년 참여정부 들어 실질적인 1차 계획으로서 과학기술중심사회 구현과 제2 과학기술입국을 기치로 5대 영역과 10대 전략과제를 담았다. 이명박 정부의 제2차 계획은 저탄소 녹색성장 깃발 아래 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5%, 7대 분야 육성, 7대 과학기술강국 도약을 제시하며 2008년 시작됐다. 이후 2013년 박근혜 정부의 3차 계획에서는 창조경제를 앞세워 R&D 투자 확대, 전략기술 개발, 창의역량 강화, 신산업 창출, 과학기술 기반 일자리 확대를 내세웠다.

2040년까지의 장기적 관점에서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수립된 문재인 정부의 4차 과학기술기본계획은 인류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미래 도전을 위한 과학기술 역량 확충, 활발한 혁신생태계 조성, 신산업과 일자리 창출 가속화와 과학기술로 모두가 행복한 삶 구현을 4대 전략으로 제시했다. 전략별 중점 추진과제로서 19개를 내세웠고 11개 과학기술 대분류에 따른 120개의 중점 과학기술이 정해졌다.

얼마 전 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의결된 5차 과학기술기본계획은 내년부터 실행계획을 수반해 5년 동안 시행된다. ‘과학기술이 선도하는 담대한 미래’를 비전으로 제시하며 3대 전략으로서 질적 성장을 위한 과학기술 체계 고도화, 혁신 주체의 역량 제고 및 개방형 생태계 조성과 과학기술 기반 국가적 현안 해결 및 미래 대응을 제시했다. 그중 임무 중심의 연구개발체계 제시는 기업가적 안목으로 과학기술의 성취도를 높이기 위한 것으로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부분이다. 다만 경제 관료들이 이 부분에 대한 평가를 위해 성과에만 매몰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성과 평가에 대한 부분도 과학기술적 접근이 필요하다.

수차례에 걸친 국가 과학기술기본계획들은 공통적으로 과학기술 본연의 목적 그대로 국민의 삶의 향상을 최우선으로 내세워 왔다. 여러 실행을 통해 두드러진 성과가 도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국가 과학기술에 대한 이 대계들이 제대로 실행돼 왔는지는 의문스럽다. 왜일까? 기업이나 국가에서 혁신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의사결정권자의 숙고와 판단을 통한 실행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 안다. 그렇지만 과학기술에 대한 국가 의사결정권자의 생각의 비중과 의지의 정도가 이 기본계획들의 실천력을 얼마만큼 보장할 수준이었는지는 의문스럽다. 

세종실록에는 ‘태평성대란 백성들이 하려고 하는 일을 원만하게 하는 세상이다’라고 적혀있다. 지금의 과학기술기본계획이 추구하는 방향과 동일한 내용이다. 일본에서 15세기 전반기의 세계 과학기술업적을 정리한 ‘과학사 기술사 사전’에는 세계를 대표하는 최고 기술 62건 중 조선이 보유한 세계기술이 29건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세종대왕 재위기간만 고려하면 21건이다. 당시 세계 최고 기술의 3분의 1 이상이다. 세종대왕은 재위기간 동안 백성의 삶의 향상을 위해 농업 생산성을 높이고자 과학기술개발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특히 천문 및 농업에 대한 기술개발을 국책과제로 내세워 직접 집현전에서 자주 토론을 벌였다. 세종대왕은 재위 동안 평균 5일에 한 번씩 경연을 통해 국정과제를 토론하고 결정했다고 한다. 물론 시대도 다르고 대내외 환경의 다양성과 복잡성도 천양지차일 수 있다. 하지만 고금을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 것은 의사결정권자의 진정한 관심과 의지가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과학기술기본계획을 통해 국가의 연구개발 기조를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바꾼다고 나선 지도 많은 시간이 지났다. 창조경제 시절에는 중요한 키워드 중의 하나였다. 선도형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예산이 필요하다. 특히 시간의 문제는 정부가 바뀌는 주기에 따른 정책 변동성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지속성의 문제이다. 이를 보장할 수 있는 법과 제도적 접근도 필요하지 않을까?

정부가 이번에 내세운 과학기술 어젠다가 의사결정권자의 지대한 관심과 의지를 기반으로 긴 호흡으로 진행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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