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0일 미국 내 16위 규모의 은행인 SVB(Silicon Valley Bank)가 파산했다. 실리콘밸리 지역의 벤처기업 자금조달을 담당하던 40년 역사의 은행이 불과 48시간 만에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이 발생하며 사라진 것이다. 파산의 원인으로 지목된 이유는 다양하다. 급격한 금리 인상에 따른 유가증권 평가손실, 경영진의 무리한 투자, 전반적인 리스크 관리 부재 등이 거론된다. 

여기에 더해 주목해야 할 점은 SVB는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분류 기준으로 Category 3에 해당하는 은행이라는 점이다. Category 1과 2의 은행은 금융위기 방지를 위해 엄격한 규제를 받는 반면, Category 3은 비교적 느슨한 규제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미국 금융시스템에서 SVB와 유사한 분류 기준의 은행들이 ‘약한 고리’인 셈이며, 금리 상승기인 현재 시점에서 유사한 위기는 언제든 터질 수 있다는 점이다.

SVB 사태 이후 미국 정부는 예금 전액을 보증하고 은행 유동성 지원을 위한 기금을 조성하는 등 발 빠른 대처로 피해 확산을 최소화하고 있다. 그러나 안심하기엔 이르다. 크레딧 스위스(CS)와 같은 유럽 대형은행으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고, 그 파장이 한동안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국내 은행 역시 안심할 수 없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하나, 투자가 아닌 대출 중심의 우리나라 은행 시스템상 위험의 전이는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된다.

SVB 사태는 시스템상 약한 고리의 관리가 중요함을 일깨워 줬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경제의 ‘약한 고리’는 무엇일까?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겠지만,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빼놓을 수 없다. 주택경기 침체와 레고랜드발 사태로 인해 부동산 PF에 대한 위험이 그 어느 때보다 크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의 일련의 자금시장 긴급대책으로 유동성 위험은 다소 완화됐으나, 시장위험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저금리 기간 부동산시장 호황으로 증권사와 여신전문금융회사(여전사) 등을 중심으로 부동산 PF가 증가해 그 잔액이 125조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 침체와 미분양 우려로 PF 연체율이 증가하며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큰 브릿지론(PF 이전 단계 임시대출)을 많이 취급하고 있는 증권사, 여전사, 저축은행, 상호금융 등은 향후에도 위험에 크게 노출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2000년대 이후 부동산시장과 자본시장의 연계 확대는 긍정적인 역할도 컸지만, 위기 발생으로 부실화될 경우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기초 담보를 제공한 시행사와 시공사의 부실을 초래하게 된다. 미분양이 증가하는 가운데 금리 상승, 공사비 증가, 수익성 악화 등으로 부동산 PF 시장 환경은 복합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 최근 지방사업장에서는 미분양 우려로 수백억원의 손실을 감수하고 시공권을 포기하는 사태까지 발생하는 등 시장 불안이 계속되고 있다.

다행히 정부는 부동산 PF 시장 불안을 차단하기 위해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사업장 관리 강화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 정책은 신용등급 A급 이상의 우량 건설사에 집중되고 있어 중소건설사, 지방사업장을 중심으로 부실 위험은 여전하다. 우리는 이미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분양 증가에 따른 PF 시장 부실화로 중소건설업계는 물론 저축은행 등의 연쇄 도산을 경험한 바 있다. 중소건설업계와 같은 약한 고리에 대한 맞춤형 지원제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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