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이슈와 함께 촉발된 수많은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신기술들이 빠르게 등장하고 있다. 현장에서 이미 드론을 활용한 측량이 진행되고, VR을 활용한 사전 설계와 검토가 이뤄지며, 인공지능 굴삭기나 3D 프린터의 현장 접목이 시도되고 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융복합 기술들이 빠른 속도로 개발돼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공공공사에서는 고착화된 예정가격과 설계 기준 및 대가 기준은 이러한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먼저 공사별로 업체들이 과거에 재래적인 기술로 수행했던 가격에 기반한 예정가격이 설정돼 있고, 이 가격이 새로운 기준 가격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기업들은 비용증가가 수반되는 신기술 도입을 제안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공공 발주자 입장에서도 신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매번 기준을 수립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일본에서는 2014년 6월에 공공공사 품질 확보 촉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면서 사양 확정이 어려운 공사에 대해 기술제안 심사 및 가격 교섭을 통해 사양을 확정하고, 추후에 예정가격을 정할 수 있는 기술제안 교섭방식이 도입됐다. 이를 통해 시공자는 예산 제약 없이 기술적 요소를 반영할 수 있게 됐다.

기술제안 교섭방식에서는 기업 참가조건을 설정할 때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기업 실적과 기술자를 평가해 입찰 참가 기업을 설정하지만, 이어지는 교섭권자 선정 시에는 기업 실적과 기술자 점수 등 기존 평가를 배제하고, 순수한 기술제안만을 평가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발주자는 입찰에 참가한 기업이 해당 프로젝트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고, 어떠한 문제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는지,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해 어떠한 공법으로 제안하는지 등에 대해 평가한다. 이 평가점이 높은 기업이 우선 교섭자가 된다.

우선 교섭자가 제시한 견적서와 견적조건서를 바탕으로 발주자는 가격 교섭과 기술 내용을 협상하고, 협상이 성공되면 낙찰자가 된다. 협상이 실패한 경우에는 기술평가점 차점자가 다음 교섭대상자가 된다. 이 과정에서 발주자는 교섭 과정에서 복수의 입찰자들이 제시한 금액의 평균값이나 중앙값을 참고액으로 설정하지만, 참고액은 계약 가능한 최대 금액의 의미를 갖는 예정가격이 아니며, 참고액을 넘어서는 금액으로도 계약을 맺을 수 있다.

일본 국토교통성의 기술제안 교섭방식은 금액 한계를 설정, 민간에서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을 제약하지 않고, 먼저 최적의 안을 제안받은 다음에 가격을 협상해 예정가격을 정하는 형태를 가진다. 예정가격을 확정한 후에 발주가 이뤄지는 우리나라 방식과는 매우 큰 차이점이 존재한다.

개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기술은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비용이 수반된다. 이처럼 예산 범위를 제약하는 구조에서는 시공사들이 신기술 사용을 제안하기 어렵고, 기존과 비용 측면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는 기술을 신기술로 제안하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공공공사에서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건설산업의 기술 발전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 까다로운 시공 조건을 가지고 있거나, 난이도가 높은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선별적으로 예산 제약을 풀고, 신기술 사용 및 도입을 촉진할 수 있는 발주방식 마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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