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미분양 아파트가 3월 말 현재 7만2000호에 이르는 것으로 국토교통부가 공식 발표했다. 최근 기술형입찰 공사 4건이 유찰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서울에서 극소수의 알짜배기 재건축단지를 제외하면 전국의 재건축·재개발조합이 시공사를 구하기 어렵다는 소문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주택사업자가 미분양을 우려해 선뜻 분양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미분양 증가와 원가 상승으로 공사가 중단되고 중소건설사가 부도 위기와 줄도산 리스크로 좌불안석이다. 최근 어느 건설사가 보증액 440억원의 현금손실을 감수하고 지방의 주상복합아파트 시공권을 포기했다.

재건축조합의 기대와 달리 공사입찰을 시공사가 외면하는 이유가 뭘까? 필자가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 옆 단지의 재건축조합장이 불신임 투표로 해임됐다. 통합 개발하면 원가를 낮출 수 있는 데 이를 기피했다는 게 이유였다. 해임에 찬성했던 조합원이 가진 반값 아파트 인식이 놀랍다. 우선계약협상대상 시공사와 계약 파기 시 조합원이 지불해야 할 피해 보상액을 지불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주장에 다시 놀랐다. 시공사 대표와 그룹총수 집 앞에서 시위하면 시공사가 손실금을 감수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황당한 주장까지 한다. 반값에 시공할 수 있는데 그룹총수가 이미지 훼손을 각오하면서까지 손실금을 청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이 조합원의 마음을 움직였다.

반값 아파트, 반값 공사비 주장과 완전히 다른 지금의 현실이 나타나는 원인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동안 반값 아파트, 공공공사 원가거품론을 선동하던 집단과 부도 위기에 노출된 산업체는 물론 건설사업자 단체의 대응이 궁금하다. 선동집단의 논리대로라면 분양률 50%나 원가상승 50%에도 도산이나 부도 공포가 없어야 한다. 반값 원가로 공사할 수 있다면 공사가 유찰되지 않아야 한다. 시공사가 원가 상승을 이유로 계약을 파기하는 사태가 일어날 리도 없다.

춘천 레고랜드발 사업금융 보증 중단 사태가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나야 했는데 현실은 산업체 전체가 금융조달 실패로 극심한 자금 부족 공포로 바늘방석이다. 원가 50%로 공사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면 잉여자금이 쌓여있어 웬만한 금융 불안과 무관해야 하는 데 현실은 이와 정 반대다. 해외건설 공사의 세전 수익률이 2% 선을 넘기도 힘들다는 게 해외시장 진출사업자의 공통된 고민이다. 이런 사태에 대해 반값 원가를 정말 믿었다면 산업체가 엄살을 피운다고 비난해야 하는 데 침묵한다. 왜 침묵할까?

공공공사나 아파트공사를 반값으로 완공할 수 있다면 국내건설회사가 세계 건설시장에서 수주경쟁이 아닌 선택 수주 혹은 발주자 지명에 의해 시장을 주도 할 수 있어야 하는 데 현실과는 완전히 다르다. 공사원가에 50% 거품이 내재해 있었다면 당연히 해외시장도 건설사의 선택에 달려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수익이 높으면 금융투자기관들이 극심한 불황에도 건설사나 민간투자사업에 몰려들지 않겠는가?

국내 건설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현상이 발생하는 가장 확실한 이유는 공사원가 50% 거품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내 건설원가 산정 방식과 인식에 상당한 오류가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원가거품론을 주장하는 집단이 국민으로부터 공감을 얻는 것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필자의 추론은 국내 건설에 고착돼 있는 3不(부정·부패·부실) 이미지가 가장 큰 원인이다. 한국건설에 고착화된 부정적 이미지를 혁신하지 않고 시장이 안정되면 곧바로 선동집단이 재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국민은 공사원가 산정기준과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 소비자의 보편적 심리는 언제나 “고품질·낮은 가격”이다. 정상 가격보다 낮은 가격을 원하면서 품질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선동집단은 이런 국민의 심리를 이용한다. 선동적 주장에 대해 산·학·연 리더그룹의 무관심과 무대응이 사실을 왜곡시키는 데 일조한 것이 아닌지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리더그룹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한국건설의 부정적 이미지를 이번 기회를 통해 긍정적으로 바꿔야 하지 않겠는가? 기회를 적기에 활용하지 않으면 건설은 3불(不)의 제 자리다.

국민과 발주자가 가진 공사원가에 대한 의구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시범적으로 아파트와 교량 공사를 선정해 실제 투입원가를 공개하는 계약을 시도해볼 만하다. 국가계약법·지방계약법이 외면하는 실비보상계약(reimbursable contract) 방식을 통해 실 투입 공사원가를 공개하도록 해 보자는 것이다. 공사원가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반값의 진실 여부를 국민과 발주기관에게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선정된 시범 공사는 국가계약법에 명시된 이윤을 시공자에게 따로 지급해야 함은 물론이다. 아무도 신뢰하지 않는 품셈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음과 동시에 가장 확실한 증명이 될 수 있다. /서울대 건설환경종합연구소 산학협력중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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