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조합과 시공사 간의 공사비 검증 관련 문제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의 제도적 보완에 대한 논의가 있다. 가끔 분쟁당사자 중 공사비 내역서가 없다는 점이 분쟁을 더 야기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고, 공사비 내역서 때문에 더 문제가 된다고도 한다. 그러나 과연 공사비 내역서를 모두 도입하거나 없애면 더 좋을까? 어떠한 이점과 단점이 있을지 우리는 건설공사 발주제도에 대한 이해를 보다 입체적으로 한 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논의에 앞서 ‘계약자유의 원칙’은 근대 민법의 3대 원칙을 이루고 있는 원칙으로서, 우리 법원에서도 당사자 간 합의한 내용에 따라 계약을 이행하도록 판단하는 것은 기본적인 전제로서 다뤄져야 한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될 것이다.

건설공사계약에서 공사비 내역서가 분쟁을 해결해 줄 수 있을 만한 대표적인 발주방식은 발주자가 설계서를 작성하고 입찰을 진행해 시공사를 선정하는 이른바 설계·시공 분리방식(Design-bid-build)의 계약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설계서에 해당하는 물량의 내용과 교부된 물량의 차이가 발생하는 경우나 누락, 오류 등에만 시공사가 발주자에게 부담해야 할 입증책임에 대해 다소 가볍게 입증할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발주방식은 공공공사에서 주로 적용되는데, 민간사업에서는 거의 적용하지 않는다. 특히 조합의 아파트 재건축 사업은 매우 빠르게 사업을 시작해야 하고 PF(프로젝트 파이낸싱)를 일으켜야 하며, 트렌드에 민감한 시장의 성격을 반영해 설계가 수시로 변경될 여지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공사비 내역서를 만들고 이를 설계서 내지는 계약문서에 포함해 계약을 체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 법 제도로 강제하면 그야말로 무리하게 가능할 수 있을 것이나 설계·시공 분리방식의 계약에서 설계서의 누락, 오류, 불분명, 상호모순은 계약금액 조정의 대상이 되고 이때 신규단가의 범위에서 협의해야 한다면 발주자인 조합으로서는 계약 당시 계약금액은 유지되지 못하고 대부분의 설계변경으로 인해 대폭 증액된 공사비를 인정해줘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리스크다. 따라서 발주자로서는 이러한 계약방식으로 발주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기술적 전문성이 떨어지는 발주자가 기술적 역량이 갖춰진 시공사를 상대로 계약적 리스크를 부담하도록 계약문서를 구성하는 것은 계약을 유인하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하는 것으로 건설시장 활성화를 위한 적용방안으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또 다른 발주방식인 설계시공일괄방식은 시공사가 실시설계를 완성하고 이에 따라 시공사가 공사비 내역서를 작성해 제출하는 방식인데, 이는 작성자가 시공사이므로 실제 물량과 다르더라도 이를 정산받지 못하므로 보다 공사비 내역서가 분쟁해결 차원에서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공사비 내역서를 계약문서에 편입하는 것이 분쟁 해결을 위한 실효성이 있는 대책으로 보기에도 어려울 뿐 아니라 오히려 강제하는 경우 중요한 원칙을 제한할 여지가 있다. 건설공사 입찰계약방식은 진화하고 변화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살아있는 생태계로서 존재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왜 같은 건설업계 종사자들 간 이런 현상 인식의 괴리가 생기는 것일까. 역시 건설산업이라는 생태계는 매우 복잡해 단순한 논리로 언급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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