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정비사업의 두 줄기는 재건축과 리모델링이다. 이 중 리모델링 사업 성과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낮은 사업성과 까다로운 규제 때문이다. 특히 리모델링 사업성 개선의 핵심인 수직증축에 대한 규제가 한층 강화되면서 정비업계가 타격을 받고 있다.

최근 1기 신도시를 포함해 수도권에서 추진 중인 리모델링 아파트 정비사업이 연달아 좌초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 서초구 잠원동 ‘잠원한신로얄’이다. 1992년 준공된 208가구 규모의 이 아파트는 수직증축을 추진해왔지만, 2차 안전성 검토에서 수직증축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2017년 1차 안전성 검토에서 수직증축이 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고, 2020년 수직증축 리모델링 기술을 적용하는 실증 단지로 선정됐지만 6년 만에 불합격 통지서를 받은 것이다. 조합원들은 허탈감 속에 재신청과 조합청산을 두고 저울질을 하고 있다. 어느 쪽으로 결론을 내리든 이 아파트의 노후화는 앞으로 상당 기간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와 서울시의 수직증축 기준 강화도 리모델링 사업에 악재로 작용했다. 

지난 7월 서울시는 법제처와 국토교통부의 유권해석에 따라 1층을 필로티로 하고, 최상층을 추가하는 방식의 리모델링도 수직증축에 해당하며 이에 따른 안전성 검토를 받아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동안 수평증축으로 간주했던 ‘1층 필로티+최상층 추가’가 수직증축으로 뒤집힌 것이다. 

기존에 수평증축으로 허가를 받은 아파트 단지는 수직증축 안전성 검토를 새로 받거나, 사업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서초구 잠원동아와 용산구 이촌한가람 등이 사업 차질에 따른 비용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주민의 안전을 위해 정비사업의 안전성 검토 절차와 기준을 준수하는 건 필요하다. 하지만 좀처럼 사업에 속도가 붙지 않는 느림보 행정과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규제는 불신과 혼란만 가중할 수 있다.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는 과정에서 사업이 장기화할수록 공사비 상승, 인건비 부담은 더 커진다. 신통기획 등으로 주거환경 개선에 강한 의지를 보여온 서울시가 사업의 동력을 떨어뜨린 것이다.

1기 신도시에서도 리모델링 사업 포기가 속출하고 있다. 행정절차와 규제 면에서 뚜렷한 장점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굳이 리모델링 노선을 고수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경기 안양 평촌신도시에선 이미 은하수마을, 청구아파트 등이 리모델링 사업 백지화를 결정했다. 고양 일산신도시의 여러 아파트 단지들도 사업 철회를 논의 중이다. 이들은 재건축으로 선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주택법에 따르면 리모델링은 준공 후 15년 이후 아파트면 추진할 수 있다. 준공 후 30년은 지나야 하는 재건축보다 조기에 시작할 수 있다. 초과이익 환수제도 적용받지 않는다. 가구 수가 적거나 용적률 200%를 초과해 사업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아파트단지 입장에선 리모델링이 새 아파트로 탈바꿈하기 위한 거의 유일한 선택지다. 2년 전 까다로운 재건축 규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집중 조명을 받았다. 하지만 정부와 서울시 모두 현재까지 이렇다 할 성과는 고사하고, 규제 강화 정책으로 실망감만 키웠다.

정부와 학계,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수직증축 요건 완화, 용적률 완화, 절차 간소화, 나아가 내력벽 철거 허용 등으로 리모델링 사업의 막힌 혈을 뚫어줘야 한다. 

리모델링 사업의 현주소를 냉철하게 점검하고, 반드시 지켜야 할 요건들을 명시한 뒤 다른 규제들은 과감히 걷어내야 한다. 돌발변수도 없애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이를 개선하지 않는 한 리모델링의 봄날은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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