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집을 못 살 것 같아요”

송년회를 겸한 자리. 30대 초반의 후배 A가 심드렁하게 내뱉는다. ‘우리는 집을 못 살 것 같다’. 이제는 익숙해진 MZ세대의 넋두리다. 최근 분양했던 둔촌주공 분양가를 보니 59㎡가 10억원이다. 84㎡는 13억1000만원이다. 그나마 이건 분양가다. 분양을 받지 못한 사람이 분양권을 전매하려면 여기에 몇억원을 더 얹혀줘야 한다. 요즘은 서울 외 지역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동탄 같은 수도권 신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부산, 대구, 광주 같은 광역시권도 웬만하면 분양가가 6억~7억원을 넘어선다. 지방경제를 생각하면 사실 엄두가 안나는 액수다.

최근 미국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가 출산율이 급감한 한국을 흑사병이 창궐한 중세유럽에 빗대 화제가 됐다. 칼럼니스트 다우서트는 ‘한국은 소멸하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이 정도(출산율 0.7명)를 유지하는 국가는 한 세대를 구성하는 200명이 다음 세대에 70명으로 줄어들게 된다”며 “이는 14세기 흑사병이 유럽에 몰고 온 인구감소를 능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구감소는 2020년부터 4년째다. 인구 자연감소(사망자 수에서 출생아 수를 뺀 것)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2년간 밀양, 공주규모의 지자체 2개가 사라졌다는 얘기다.

초저출산율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부동산도 그중 하나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과도한 주거비는 청년들이 결혼을 주저하게 만든다. 한국은행이 최근 펴낸 ‘초저출산 및 초고령화사회:극단적 인구구조의 원인, 영향, 대책’ 보고서를 보면 의료비, 교육비보다 주거비를 걱정하는 그룹의 결혼 의향이 평균대비 5.3%포인트 낮고, 희망자녀는 0.1명이 적었다. 또 16개 시도를 분석해보니 전세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인구밀도에 따라 출생률 편차가 크게 나타났는데 세종은 1.12명인 반면 서울은 0.59명에 불과했다. 한은은 실질주택가격지수를 2015년 수준으로 하락시킨다면 출생률이 0.002명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대안으로 주택가격 하향 안정화를 꼽았다.

한은이 제안한 대로 주택가격을 하향안정화 시키는 것이 청년들의 광범위한 주거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해법이 될 수 있다. 물론 집값 하향안정화는 말처럼 쉽지 않다. 주택을 보유한 기성세대의 저항이 크고 주택담보가치 하락에 따른 경제적 리스크도 무시하기 힘들다. 하지만 현 초저출산이 ‘흑사병’수준으로 심각하다는 컨센서스가 있다면 사회적 합의가 영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내정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도 이 지점이다. 향후 부동산 대책을 마련할때 초저출산이라는 한국사회의 당면문제를 비중있게 감안해 달라는 것이다. 당장의 부동산 시장에 함몰되지 말고 조금 더 먼 지점을 바라봐 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다우서트는 한국의 초저출산이 이대로 진행된다면 한국사회는 곧 ‘광활한 유령도시와 황폐화된 고층빌딩’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같은 ‘콘크리트 디스토피아’ 상황까지는 정말 가지 말아야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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