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도권의 한 아파트 분양 현장에 다녀왔다. 소위 말하는 ‘1군 브랜드’ 아파트 현장이었는데, 그 단지는 주변 시세나 분양가보다 훨씬 싼값에 아파트를 내놨다.

이유를 물었다. 시공 건설사 임원은 “입주 때 잔금을 못 받는 경우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임원은 “분양가에 대해 회사 내부에서 논쟁이 좀 있었지만, 입주 대란에 발목 잡히는 것보단 당장 몇 푼 손해 보는 게 낫다는 의견이 우세했다”고 말했다.

며칠 뒤 또 다른 대형 건설사가 시공하는 아파트 분양 간담회에서 나온 분양가 역시 주변 시세보다 낮았다. 한 분양 대행사 대표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요새 들어 대형 건설사일수록 공급과잉과 이에 따른 미분양, 미입주에 대해 많이 신경을 쓰는 것 같다”며 “어떤 건설사라도 2∼3년 뒤 입주 때 부동산 시장이 지금처럼 좋을 것이라고 장담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파트 분양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공급과잉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아니 공급과잉과 미분양 공포는 점점 커지는 분위기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9월 말 현재 전국 미분양 주택이 3만2524가구로 전월보다 2.6%(826가구) 늘었다. 수도권 미분양 주택은 전달보다 8.4% 줄었지만, 지방은 13.7%나 는 게 더 우려스럽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의 분양 양극화가 더 심해지는 것 같아서 말이다.

미분양은 수급 불균형에서 비롯된다. 수요를 넘어선 과도한 공급이 주인을 찾지 못한 빈 집을 늘리고, 종국에는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이끈다는 말이다.

여러 곳에서 경고음도 커지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지난달 29일 올해 전국 아파트 분양 예상 물량을 토대로 2∼3년 뒤 대규모 미분양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허윤경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도 11월3일 열린 ‘2016년 건설·부동산 경기전망 세미나’에서 “2016년까지 공급 증가가 지속하면 하반기 이후에는 미분양, 미입주 등 재고 적체 현상이 나타날 우려가 있어 공급 조절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위기감을 느낀 모양이다. 정부가 내년도 가계대출 심사 강화를 예고한 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중도금 집단대출 규제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집단대출이 축소되면 당장 분양 시장에 악영향이 예상된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현 정부 들어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불안 요인으로 똬리를 틀고 있는 가계대출 폭증 문제는 한숨 돌릴 수 있을 것 같다.

다 좋다. 그런데 시장은 불만이다. 불과 1∼2년 남짓한 사이에 정부 정책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고 있어서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주택시장 훈풍과 전셋값 고공행진에 따른 매매 물량 증대로 건설사들이 앞다퉈 주택 공급량을 늘렸다. 올해 말까지 예상되는 총 분양 물량은 약 49만 가구. 전년도 27만 가구 대비 약 80%가량 많다. 과연 이만큼의 신규 주택 구매 수요와 자금이 시중에 있는지부터가 의문이었다.

정부는 이런 물음에 ‘저금리’로 답했다. 은행에서 저리에 돈을 빌려 집을 사라고 등 떠밀진 않았지만, 사실상 그렇게 유도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투자 수요까지 가세해 분양 시장이 활활 불타 올랐다. 가계 대출 증가와 공급 과잉 우려가 당연히 뒤따랐다. 또 그러니 정부는 이번엔 대출 규제 기조로 슬쩍 방향을 틀어버린다.

새 국토교통부 장관이 취임을 앞두고 있다. 강호인 장관 내정자는 아마도 지금 부동산시장 활성화와 서민 주거안정 등 국토부 당면 현안에 대한 밑그림을 열심히 그리고 있을 것이다. 거시경제 전문가인 강 내정자가 예측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부동산 정책을 마련해 오면 좋겠다.     /나기천 세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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