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제도의 뿌리가 되는 법령의 용어와 표현부터 국민의 일상 언어생활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많다. 법제처가 복잡한 법령문장을 한글로 바꾸고 쉽게 쓰는 작업을 이제야 이뤄냈다는 것은 아쉽지만 늦었다고 할 수 없다”

세종대왕은 백성을 ‘어엿비’ 여겨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인 훈민정음을 반포하고 한글을 창제했다. 한글은 어떤 문자보다도 뛰어난 과학적 원리를 담고 있는 쉽고 아름다운 글자다. 허나 아직 우리는 한자 문화의 오랜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일본식 용어의 잔재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현대에 와서는 출처불명인 외래어의 홍수 속에 한글이 여기저기 생채기를 입고 있는 형국이다.

또한, 국가제도의 뿌리가 되는 법령의 용어나 표현부터 일반 국민의 일상 언어생활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많다. 법치국가의 법 문장은 국민이 쉽게 읽고 이해해 법을 지킬 수 있도록 표현돼야 하는 것은 당연한 요구다. 그래서 법제처에서는 지난 2002년부터 ‘법률 한글화 사업’을 시작해 2006년부터는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을 꾸준히 추진해 오고 있다. 아직도 일반 국민들이 보기에는 부족하고 갈 길이 멀어 보이지만 많은 격려와 성원에 힘입어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중이다.

예를 들면 ‘징구하다’라는 말이 있다. 보자마자 무슨 뜻인지 바로 아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 뜻을 어림잡아 짐작하는 사람 또는 무슨 의미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으실 것이다. 한자를 보면 ‘징구(徵求)하다’인데 ‘무언가를 내놓으라고 요구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징구하다’는 말을 사용하는지 모르겠다. 아마 ‘내게 하다’나 ‘받다’라는 표현을 주로 쓸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법령에서는 ‘징구하다’는 표현이 종종 사용됐고, 아직도 일부 법령에는 남아있기도 하다. ‘구거(溝渠)’ 라는 용어 또한 ‘도랑’으로 바꾼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법제처에서는 이처럼 그동안 한자로 쓰여 있던 법률을 한글로 표기하고, 어려운 한자어나 생소한 용어를 쉬운 한자어나 우리말로 정비하며, 어색한 문어체나 번역체 문장을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친숙하고 매끄러운 문체로 다듬는 등 1000여 건의 법률을 알기 쉽게 만들었다.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를 통해 개선한 용어를 살펴 보면, ‘구배(句配)’는 ‘기울기’나 ‘비탈길’, ‘가각(街角)’은 ‘길모퉁이’, ‘사리채취기’는 ‘자갈채취기’, ‘지득한’은 ‘알게 된’으로 정비해 보다 알기 쉽고 익숙한 표현이 되도록 했다. ‘합의간주(合意看做)’를 ‘합의한 것으로 보는 경우’로 고치기도 했다.

이러한 사업의 하나로 장애인을 비하하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용어인 ‘정신병자’는 ‘정신질환자’, ‘불구자’는 ‘장애인’, ‘농아자’는 ‘청각 및 언어 장애인’, ‘간질병자’는 ‘뇌전증 환자’로 고치고, 아직도 법령에 남아있는 일본식 용어인 ‘갑상선’은 ‘갑상샘’, ‘가도’는 ‘임시 도로(통로)’, ‘기타’는 ‘그 밖에’, ‘리어카’는 ‘손수레’로 바꿔가는 등 일본식 한자어, 일본식 외래어 등을 쉬운 한자어나 우리말로 바꾸며, ‘엽연초’는 ‘잎담배’, ‘안검’은 ‘눈꺼풀’, ‘하구언’은 ‘하구둑’으로 정비하는 등 관련 분야에서 관행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도 지속적으로 발굴해 개선하고 있다.

또한 법령의 문장구조도 ‘설정등록된 후가 아니면 행사할 수 없다’를 ‘설정등록된 후(에만) 행사할 수 있다’와 같이 이중부정문을 가능하면 긍정문으로,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제외한다’ 또는 ‘예외로 한다’로 고치는 등 알기 쉽게 정비하고 있다. 

올해 570돌 한글날을 앞두고 있다. 복잡하고 어려운 법령문장을 한글로 바꾸고 일상의 언어생활에 맞도록 쉽게 쓰는 작업이 이제야 이루어졌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한글을 사랑하기에 결코 늦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이같은 한글, 대중화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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